사진: 이제 노인이 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IFCJ는 삶의 마지막에서라도 상처를 치유하고, 좀 더 인간다운 여생을 마감하도록 돕습니다.

 

현재 약 18만 9천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중 4분의 1은 극심한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노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이들은 집세를 내거나 음식을 사먹거나 약을 처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중 한 가지만 해결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전쟁 중에 가족을 잃거나 헤어진 경우가 많아 홀로 외롭게 지내는 노인도 상당수에 이릅니다. 많은 것이 삶을 힘겹게 하지만, 이들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외로움입니다.

이스라엘에 이토록 많은 노인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파악한 즉시, IFCJ는 바로 ‘존엄성 회복과 유대감 형성(With Dignity and Fellowship)’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대부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인 가난한 노인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지원하고, 소속감과 교제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존엄성 회복을 돕다>

리다와 니콜라이는 얼마 되지 않는 사회보장 연금으로 자그마한 공공주택에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IFCJ의 노인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포장된 식품을 유일하게 매월 제공받습니다. 그리고 적적한 집안을 밝게 해주고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이 가정을 방문해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이제 리다 부부의 삶 속에는 이 프로그램이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부.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거꾸로 평생 동안 고통을 견디며 살아온 이 노부부에게 작은 위안이 돼주는 것만으로 축복받았다고 한 목소리로 화답합니다.

오랫동안 가슴에만 묻어온 상처의 크기는 얼마나 클지… 리다는 조심스레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1941년 러시아에 전쟁이 발발 했을 때 고작 다섯 살이었어요. 내가 살던 Vyksa 도시는 순식간에 나치들로 인해 폐허가 돼버렸어요. 머리 위로는 쉴새없이 전투기가 날아다녔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폭격했어요. 주변은 모든 불에 탔어요. 건물 타는 냄새, 사람 타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는데 아직도 생생해요…”

그녀의 조부모는 나치들이 노인과 어린이는 해치지 않을 거라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모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리다 가족은 어떤 유대인도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확신했고, 곧 도시를 떠나는 화물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운 좋게 몇 대 남지 않은 마지막 열차를 탔어요. 그런데 정신없이 올라타 보니 천장이 없더라고요… 소와 말 등 가축을 이송하는 열차였어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한참을 달리니 우리 가족을 시베리아 Kuzbass까지 데려갔고, 내린 곳은 조셉 스탈린의 포로수용소 옆이었어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베리아에서 지낸 4년 동안 그녀가 가장 기억나는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먹은 게 별로 없어요. 그나마 배를 채운 음식은 감자였는데, 이 감자가 우리를 살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다음으로 기억나는 건 수용소에서 죽은 시체들을 싣고 가는 말과 마차들인데 그때 맡은 시체 냄새도 비슷했어요.”

 

어떤 상황에도 노부부를 돕는 이들

남편 니콜라이는 전쟁 통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종종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항상 도와주실 거라고 얘기해주었어요. 아버지는 1938년 내가 네 살 때 스탈린의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됐어요. 이후 스탈린은 포로수용소를 만들어 그에게 대항하는 적군의 아내와 아이들을 잡아넣었어요. 감금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양실조나 질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엄마가 수용소에 끌려갔을 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다른 나라로 피신했어요. 그때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주셨고, 살게 해준 것도 하나님 덕분입니다.”

전쟁이 종료된 후 니콜라이와 리다는 Vyksa로 돌아왔고, 이들은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의대에서 공부하며 서로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다는 폐의 상태를 진단하고 폐질환을 치료하는 전문의로 일했고, 남편 니콜라이는 전염병 치료 전문의로 활약하며 구 소련연방에서 자리를 잡아 촉망받는 의사로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리다 부부는 아들과 손자 곁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2004년에야 이스라엘로 귀환했습니다. 소련으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에서 지원하는 비용으로는 매달 나가는 지출을 충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IFCJ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의지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됩니다. IFCJ와 후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남은 인생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한 끼 먹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돌봐주고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를 생각해주고 어떨 땐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줘서 고마워요. 알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분은 가장 뜨거운 가슴을 지닌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