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고유의 존엄성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의 생명에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나머지 우상숭배, 간음,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유대인은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토라의 율법을 위반해도 됩니다. “누구든지 한 명의 생명을 살리는 자는 전 세계를 살리는 것이니라”(미쉬나, 산헤드린 4:5).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사람의 생명을 가치 있게 인식하고 있으나, 인간에 대한 시각은 다릅니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선해진다고 믿습니다. 즉, 죄는 인간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인간이 악하거나 선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선해질 수 있고 악해 질 수 있으나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특별한 시기에 살고 있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있으나, 때때로 우리는 이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계를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기른다면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함께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은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유대인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죠.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놀라운 일은 기독교인이 유대인 민족과 그 국가인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에는 5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이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에게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입니다”(로마서 11:18)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기독교인은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말했고, 유대교 회당에 출석했으며, 성년식을 가졌고, 토라를 읽었고, 모세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어쩌다가 지난 역사 동안 이 사실이 잊혀졌으나, 이제 기독교인에 의해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셋째,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방문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걸었던 장소를 걸으며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성지가 우리 믿음의 일부이며 유대인을 위한 것과 같이 기독교인을 위한 유산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넷째, 기독교인은 우리의 유대인 형제와 자매를 재발견했습니다. 비록 한국은 이에 해당되지 않으나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유대인을 박해한 과거의 기독교인들과 분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로 인식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서를 믿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유대-기독교의 가치가 공격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회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윤리에 대한 약속인 십계명의 주요 가치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죠. 이를 회복하기 위해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협력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성경에는 “왜냐하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전도서 4: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깊은 불화가 치유되면서 우리는 성경말씀의 진리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 어머니(혹은 일부 현재의 진보 운동에 의하면 유대인 아버지와 비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대교 전통에 의하여 부양된 사람)를 둔 모든 사람, 혹은 정식과정을 거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유대인으로 간주되기 위하여 특별히 유대교의 관습을 지킬 필요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오직 개종과정 속에서 자신이 받아들인 교리를 지킬 때에만 유대인으로 인정됩니다.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성경의 족장인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하나인 유다에서 유래하였고, 그는 훗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선조들이었고, 각 지파들은 유대인의 역사적 고국에 대한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얻게 된 지역은 유다로 알려졌습니다. 최초의 유대인은 이삭의 아버지이자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 인식됩니다.
유대인을 정의하는 기준이 유대교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기에 오늘날 정확히 세계에 유대인이 몇명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 출처는 전세계의 유대인을 대략 1,300만 명으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540만 명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나머지 520만 명은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1939년에는 1,7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세계에 살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에 의해 6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전통파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토라 전체를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토라가 절대로 수정 될 수 없다고 믿고, 유대인들이 이에 대한 모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토라를 해석하고 율법을 만들기 위한 랍비의 권한을 인정합니다.
반대로, 개혁파 유대인은 토라의 윤리적인 가치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토라의 율법이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보수파 유대인들은 정통파와 개혁파의 균형을 맞추고, 토라는 진실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적혀졌으나 변화하는 시기와 가치에 의해 종교적인 관습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유대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증오감”로 알려져 있고, 이보다 더욱 용인된 편견이나 이보다 더욱 큰 고통을 만들어낸 경우가 없습니다.

반유대주의는 단순히 역사적인 현상이 아니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유대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가 극심해진 프랑스에서 최근 설문조사를 했는데, 프랑스의 유대인 4명 중 1명이 이민을 생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2003년도에는 유대교 기관에 대한 모로코와 터키에서의 폭탄 테러 공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총리가 “유대인들은 프록시로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발언을 한 같은 해에 일어났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유대인 학교가 방화의 공격을 받았는데, 방화범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라는 쪽지를 남길만큼 이제 북미 또한 반유대주의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닙니다.

반유대주의는 6백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이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러 곳에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인과 기관들(특히 유럽과 북유럽의 기독교 교파들)은 반유대주의를 정치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민주적인 이스라엘과 나치 독일을 비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의 잔해에서 솟아났고, 많은 관찰자들은 이스라엘을 악마화 함(반유대주의)으로써 세계 3분의 1의 유대인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 죽인 자신들의 죄책감을 줄인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근 브라질과 우크라이나와 같이 특정 국가가 재정적인 공황이나 분쟁을 겪을 때에 유대인들은 비난과 공격의 대상입니다.

유대인은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증오가 뿌리내리고 아무런 저항없이 자라날 때 다가오는 무언의 공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품어서 서서히 퍼지는 반유대주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행동하는 이웃이 되어야합니다.

토라는 모세오경을 뜻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토라의 율법”을 말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히브리 성서(구약 성서)와 이와 연관된 모든 유대교 율법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떼려야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이를 영속적인 언약이라고 믿습니다. 비록 유대인은 하나님에게 선택 받았다고 믿고 있으나, 이는 자신들이 다른 종교인이나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대교 우주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온 우주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유대인에 대한 몇 가지 언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수의 자손들을 주시며 아브라함이 위대한 국가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추후 이 언약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유대 민족에게 토라를 주면서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끝나게 되죠.

약 4,000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거주하던 고향인 우르(오늘날의 이라크)를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고 말씀하셨죠. 그 땅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날 만큼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창세기 12:3)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신성한 언약의 일부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영원한 재산으로 준다고 약속했죠. 유대교 율법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은 조건이 없으며 영원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되었고, 오늘날 유대인의 족장들이 묻혀 있습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성지에 유대인이 거주하며 증언하기를 유대교에 뿌리를 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결혼은 유대교에서 매우 중요하며 정결하며, 자녀를 낳으라는 성경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전통 결혼식에는 랍비가 주례를 서고,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결혼식에 여러 역할을 맡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와 미래의 자녀들에게 줄 유산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사항을 적은 혼인계약서에 서명하여 줍니다. 결혼식은 정통 덮개 아래에서 이뤄지고, 신랑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진 것을 생각하며 유리잔을 발로 밟습니다. 그 뒤, 신랑과 신부는 함께 단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안방에 들어갑니다.
딸이 태어났을 경우 태어난 직후 아버지가 토라 앞에 간 이후에 딸의 이름이 지어집니다. 아들은 태어난지 8일 이후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짓는데, 이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장남이 태어나면 부모가 유대교 성직자 직분이 있는 사람 혹은 코헨에게 돈을 내며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피드욘 하벤(Pidyon HaBen)’이라는 의식을 치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죽음의 천사가 애굽인의 장남들을 데려간 반면 유대인의 맏아들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기 떄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처음 태어난 것은 다 나에게 바쳐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것은 다 내 것이다”(출애굽기 13:2)라고 말씀하였기에 정통 유대인은 장남을 하나님께 바치며, 부모는 반드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상징적인 돈을 냅니다. 이 짧은 의식은 유대인 장남이 태어난지 또는 생후한달 째 되는 날에 합니다.
성년식으로써 유대인 남성(“바르 미쯔바”, 율법의 아들을 뜻함)은 만 13세간 된 이후 성경과 랍비 율법을 따라야 하며,유대인 여성(“바트 미쯔바”, 율법의 딸을 뜻함)은 만 12세부터 따라야 합니다. 공동체 사회에서 이들은 성인이 되며, 주간별로 읽는 토라를 낭독하기 이전에 바르 미쯔바 남성은 의식에 의한 축복의 말을 해야 하며, 반면 비정통적인 환경에서는 바트 미쯔바 여성이 낭독을 합니다. 성년식은 대부분 대규모로 화려하게 기념합니다.
기도 숄로써 모직, 면 혹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하얀색 사각형 의복입니다. 각 모서리에 매듭된 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싸서 입으라는 민수기의 성경적인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 달아놓습니다. 유대인 남성은 아침 기도 동안에 입습니다. 일부는 찟찟 혹은 탈릿 카탄(작은 탈릿)이라는 의복을 온종일 자신의 상의 아래에 입으며 토라의 명령을 지킵니다.
유대교 방법에 의하여 가공한 동물(전통적으로는 양을 말함)의 뿔로 만든 나팔을 말하며, 특히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유대교 신년)’를 포함한 유대교 명절 때 붑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을 기억하기 위해 신년 중 안식일을 제외한 각 이틀 동안에는 100번 나팔을 붑니다. 쇼파르는 ‘욤 키푸르(Yom Kippur, 대속죄일)’ 마지막 날에도 붑니다. 또한 쇼파르는 시내 산에서 토라를 준 극적인 상황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유대교 신년에 쇼파르로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토라에 의하여 삶을 살게 된 언약을 기억합니다.
과거에 예루살렘의 두 성전에서 사용되었던 7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를 말합니다. 메노라의 모양은 모리아 식물의 모양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 덕분에 메노라는 유대인의 상징이 되었고 기독교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누카의 메노라는 9개의 촛대로 ‘하누키야(Hannukiah)’라고 불립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을 때에 7개의 촛대 메노라는 의식적인 목적이 없었기에, 이스라엘에서 대부분의 상점이나 가정집에는 하누카때 쓰는 하누키야가 있습니다.
유대교 달력에 의한 축제는 각자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성서적인 축제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지순례 축제로 ‘페싹(Pesach, 유월절), ‘샤부옷(Shavuot, 칠칠절),’ ‘수콧(Sukkot, 초막절)’이 있습니다. 이는 고대 시대 때에 유대인이 이 3가지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의무적으로 가야 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대제일로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유대교 신년)’와 ‘욤 키푸르(Yom Kippur, 대속죄일)’가 있습니다. 셋째, 부차적인 축제인 ‘푸림(Purim, 부림절)’과 ‘하누카(Hanukkah)’가 있습니다.

명절을 지킴으로써 유대인은 역사가 성스러운 목적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믿으며,사건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궁극적으로 세계를 구원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일부임을 믿습니다.

유대교 명절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나 ‘리무드’ 섹션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대교 신년으로 대제일의 시작이자 10일간 영혼을 깊이 찾으며 들여다보고 회개를 한 후 회개를 하다가 대속죄일로 끝이 납니다. 유대교 신년은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 아니며 엄숙함 속에 윤리적이며 영혼의 자기성찰을 갖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다음 해에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결정하는 시기입니다. 로쉬 하샤나는 자기성찰과 참회의 시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대인은 신년을 순결하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신년의 분위기는 심판 이전에 두려움과 경외함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용서함을 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도 합니다.
대속죄일로 유대교 달력에서 가장 거룩한 날이며, 대제일의 마지막 날입니다. 25시간 동안 대속죄일이 진행되며 유대인은 레위기 16장에서 명령한 금식을 합니다. 그들은 이웃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며, 음식이나 물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25일 동안 집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유대인은 회당에 가서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유대인은 욤 키푸르에 “순결해지기 위하여 너희는 물에 잠길지어다”라는 성경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미크바(mikvah, 정결 목욕)’를 지킵니다. 이에 대한 관습을 기독교의 침례교는 순결함과 회개를 통하여 새로 태어남을 상징하기 위해 세례를 줄 때에 지킵니다. 이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며 우리보다 혜택을 덜 받은 이웃을 위해 자선을 베풀고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욤 키푸르는 양나팔을 불면서 성도들이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고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매년 가을마다 전 세계의 유대인은 이 초막절의 향연인 수콧을 지킵니다. 수콧은 가을의 추수를 기념하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며 시내산 사막에서 유랑을 할 때에 임시적으로 초막인 수콧에서 산것을 기억하기 위해 즐거운 축제를 기념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인 축복에 감사를 하면서 수콧은 그들에게 세상의 물질은 일시적이며 무상하여 인간의 생명은 약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은 행복과 영적 성취를 위하여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하누카는 아마 크리스마스와 같은 시기라서 유대교 명절 중 가장 유명한 명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하누카는 성경에 근거한 명절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2번의 기적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첫번째 기적은 기원전 165년 마카비(Maccabees)의 승리입니다. 유대인 무리였던 마카비는 자신들보다 군사장비나 병력 숫자에서 월등했던 그리스계 시리아 군대를 기적적으로 무찔렀습니다. 그리스계 시리아 군대는 고대 이스라엘 성전을 더럽히고 유대인이 토라를 지키면 사형까지 했고, 유대 민족에게 그리스 헬레니즘을 강요했습니다.

둘째, 하루 밖에 유지가 될 수 없었던 촛대를 밝히는 올리브 기름이 8박 9일 동안 유지가 된 기적입니다. 유대인은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성전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비록 촛대를 밝히는 올리브 기름이 하루 분량밖에 없었으나 오직 한 개의 촛불이 계속 밝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죠. 이 기름은 발견되기 까지 8박 9일 동안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하누카 동안 유대인은 9개 촛대인 하누키야에 불을 밝히며 이 두번째 기적을 기념합니다. 이 명절 동안 매일 밤에 촛불을 하나씩 피우며, 첫째 날에 첫번째 촛대에 불을 붙이고, 마지막 8번째 날에 8번째 불을 붙입니다. 9번째 촛대는 ‘샤마쉬(shamash)’라고 불리우며 나머지 촛대에 불을 붙이기 위해 사용됩니다. 하누카의 중요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으로 유대인이 기쁘게 기념하며 자신의 믿음을 값지게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부림절로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이 멸망하는 것에서 구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유대 명절 중 가장 축제적인 분위기를 내며, 유대인은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음식과 마실 것이 담긴 선물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특히 이웃에게 자선을 베풉니다.

부림절의 기원은 하만이라는 페르시아 관원이 페르시아 왕인 아하수에로에게 특정한 날에 유대 민족을 말살시킬 법령을 공포하라고 설득했었던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만이 이러한 음모를 펼치는 것은 모르드개라는 유대인이 자신에게 절하기를 거부하여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이러한 음모를 알게되어 자신의 친척이었던 에스더에게 말하여 유대 민족을 구해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에스더가 왕의 사랑과 신뢰를 얻은 후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폭로합니다. 왕은 하만을 처형하고, 왕은 오히려 유대 민족이 멸망할 수 있었던 날에 유대 민족이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다는 법령을 제정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은 적에 대항하여 막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국가는 보존되었습니다.

유월절로써 유대 민족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거룩한 즐거운 축제입니다. 출애굽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죠. 유대인은 하나님께 노예로 고통 받는 것을 울부짖었고, 하나님은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파라오가 유대민족의 해방을 반대하자 결국 하나님은 이집트인의 장남을 죽이기 위하여 전염병을 보낸다고 모세에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받기를 어린 양을 죽여서 그 양의 피를 유대인의 문설주에 바르면 전염병이 그들의 집을 지나칠 수 있다고 했죠.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출애굽기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유월절과 출애굽은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칠칠절로써 유월절의 7주 이후를 역사적이며 농업의 요소로 기념합니다. 샤부옷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준 것을 기념합니다. 이는 출애굽기에 의하면 정확히 출애굽한 50일 이후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계시를 받았고, 그 날이 샤부옷입니다. 따라서, 샤부옷을 지키는 것을 ‘우리의 토라를 주는 계절(Zman Toratainu)’이라고 합니다. 또한 칠칠절은 추수의 계절을 기념하여 첫 번째 수확한 것을 성전에 바치고, 농부들은 하나님께서 곡식과 과일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땅에서 강제로 추방을 당한 것은 서기 1세기 이기에 유월절을 기념하는 농업의 요소는 쇠퇴되었고 시내 산에서 계시를 받고 토라를 받은 것이 주요 요소입니다.
약 4천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거주하던 고향인 우르(오늘날의 이라크)를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날 만큼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창세기 12:3)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신성한 언약의 일부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영원한 재산으로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유대교 율법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은 조건이 없으며 영원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되었고, 오늘날 유대인의 족장들이 묻혀 있습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성지에 유대인이 거주하며 증언하기를 유대교에 뿌리를 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은 특히 예루살렘(그들은 ‘알꾸드스(Al-Quds)’라 부름)을 포함한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독자적인 주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도 이 주장은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인식은 약 4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거주하던 고향인 우르(오늘날의 이라크)를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고 말씀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죠. 이슬람이 서기 7세기에 대두되기 이전인 약 2천년 전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유대인들은 서기 70년도에 성전에 파괴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지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오직 독립된 팔레스타인을 위한 수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왕 시대부터 유대인의 수도였고,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에도 요르단인들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수도로 절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히브리 성서(구약 성서)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수도라고 700번 이상 언급되어 있죠. 이 성스러운 도시는 유대 국가의 정당한 수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위한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고국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사실은 유대인들은 결코 성지를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유대 민족은 강제적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지다)”가 되어 세상 끝으로 흩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바벨로니아, 로마제국에 의하여 침략을 당했고, 이들 침략자들에 의하여 유대인은 추방을 당했습니다. 특히 서기 70년도에 로마 장군 티토스에 의해 결정적으로 예루살렘은 함락했고 이스라엘은 국가로서 주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러한 극변화하는 사건과 수많은 유대 민족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한번도 성지로 돌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한 언약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추방 속에서 약속된 땅을 결코 잊지 않았고, 유대인은 모든 일상 속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하는 관습을 유지했습니다. 시편의 기자가 말하기를,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잃게 될 것이다.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예루살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최고의 기쁨인 예루살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혀가 나의 입천장에 붙어 버릴 것이다”(시편 137:5~6).

오늘날 전세계의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합니다. 시온으로 돌아가기 위한 기도는 유대인들이 매 식사 때마다 음식을 놓고 축복을 하는 일상 기도입니다. 대제일 예배와 유월절 식사 ‘쎄데르(Seder, 유월절 저녁식사)’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열정적인 희망과 약속으로 마칩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귀환시키는 것은 구원과 장차 올 메시아를 위해 모든 유대교 기도의 중심에 있습니다. 유대인은 첫번째와 두번째 성전 파괴,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추방을 기억하기 위하여 연간 금식을 하며 애도하는 기간인 ‘티샤 바브(Tisha b’Av, 성전 파괴일)’를 갖습니다. 이로 인해 결혼식 마지막에 신랑은 성전 파괴일을 상징하기 위해 오른발로 유리잔을 깨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 관습과 의식을 통해서 유대인은 “시온으로 귀환”하는 그들의 희망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합니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접경한 영토입니다.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며, 많은 경우 1948년 유대국가가 건국된 이후 이스라엘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한때는 이집트가 가자지구를 통치했으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2005년 8월까지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크네셋(Knesset, 이스라엘 국회)’의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의 국경을 확보하고 테러리스트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가자지구에서 8,000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을 타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서안지구는 지리적으로 요단강 서쪽을 말하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성경의 땅인 유다및 사마리아 지역을 말합니다. 약 2천 3백 평방 마일의 땅에 1백만 명 이상이 살고있으며,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입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를 1967년 6일 전쟁때 점령하였고, 오늘날까지 이곳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의 원인이기도하지만, 사실이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1950년부터 1967년 까지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점령하였지만, 국제사회는 “점령”을 비난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아랍인에 의한 공격이 점령자의 지배에 대한“절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설명하려는 시도 조차 없었습니다.

2004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이 전략적인 중요성으로 주요 정착촌을 남겨두고 서안지구에서 철수하려는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어쨌든 간에 이 지역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지역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기는 데이비드 월프손(David Wolfsohn)이 디자인 했습니다. 그는 국제법에 보장된 유대민족을 위한 국가를 이스라엘에 건국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인 ‘세계 시온주의 기구(World Zionist Organization)’의 회장이었던 티오도르 헤르쩰(Theodor Herzl)의 후임자 입니다. 국기는 1891년 시온주의 운동을 상징하기 위해 소개되었습니다. 월프손은 1948년도에 유대 국가가 수립되기 수십 년 전부터 시온주의 운동과 유대 민족이 직면한 본질적은 문제를 담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정통적인 탈릿(유대교 기도 숄)의 디자인을 적용했고, 색상은 대표적으로 파란색 줄과 흰색 배경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의 별을 두 개의 파란색 줄 사이에 두어 유대 민족과 그들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투쟁을 표현하는 상징물을 완성했습니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제1회 시온주의자 총회에서 울프손이 디자인한 국기가 최초로 공개되었고, 1948년에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기로 채택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명한 서쪽 벽은 ‘통곡의 벽’으로 불려지며, 이는 서기 70년도에 티토스 장군이 이끈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유대 성전이 파괴된 이후 남겨진 잔해입니다. 통곡의 벽은 성전의 일부도 아니며, 단순히 전반적인 성전산을 고정시키는 벽입니다. 이는 거대한 바위로 건축되었고, 길이는 약45미터 이며, 그 이름은 성전의 서쪽 벽에 대한 정체성에서 유래했습니다.

1947~1967년 동안 통곡의 벽이 포함된 예루살렘은 아랍의 통치하에 있었고,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성스러운 장소에 출입이 거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되었고,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 와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공개해 놓았습니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믿음을 나타내고 연합을 위한 강력한 상징물입니다. 이는 또한 유대 민족이 수세기 동안 고통을 당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성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유대인의 관계성과 성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글로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이와 같은 막대한 애정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레쯔 이스라엘(Eretz Yisrael,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한 땅 이상입니다. 이는 모든 유대인의 믿음과 율법의 중심에 있는 땅입니다.

현대의 유대인에게 이스라엘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며, 그는 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반세기 조금 넘는 이스라엘의 생존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유산을 이어가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가겠다는 의지와 결정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