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조차 힘든 가족에게,
탈출은 또 하나의
고통이었습니다.
선천적 마비가 있는 무하나드와 관절 통증으로 걷기 어려운 아내 마날, 뼈가 약한 여섯 살 아들 마빈.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기독교 난민 지원 캠페인
개종하거나, 떠나라는 위협 앞에서 이들은 모든것을 잃은 채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지금 박해를 피해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세요.
기독교 난민 가정 후원하기선천적 마비가 있는 무하나드와 관절 통증으로 걷기 어려운 아내 마날, 뼈가 약한 여섯 살 아들 마빈.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차가운 명령이 확성기를 타고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가족은 필요한 것조차 챙기지 못한 채 급히 피란길에 올랐고, 몸이 불편한 세 사람에게 그 길은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과 생활비, 아이의 학교와 치료 같은 삶의 기본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뿐입니다.” — 무하나드
그 후 도후크의 성 조지 교회에서 1년 2개월을 지냈지만, 몰려드는 피란민과 부족한 음식 속에서 삶은 멈춘 듯했습니다. 결국 가족은 작은 희망을 품고 다시 위험한 길을 건너 다른 나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부모님 곁을 지키던 칼루스에게 어느 날, 개종을 강요하는 무장단체의 위협이 닥쳤습니다. 한 대원은 어머니가 건네준 십자가를 그의 목에서 거칠게 뜯어 바닥에 내던지며 밟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내게는 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들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
칼루스는 믿음을 저버릴 수 없어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 선택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칼루스는 약 50일 동안 끔찍한 고문을 견뎌야 했고, 결국 총살대 앞에 서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그는 한 기독교 병원에서 눈을 떴습니다.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는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모든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 — 칼루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믿음과 희망만은 놓지 않았던 칼루스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교회 경비원으로 일하던 오사마는 어느 날, 눈앞에서 친구가 살해되는 참혹한 일을 겪었습니다. 총을 든 대원은 그의 머리 위로 총을 쏜 뒤 “다음 총알은 네 머리를 향할 것”이라며 위협했습니다.
얼마 뒤에는 불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가운데 오사마만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오사마는 위험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4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다시 무장단체가 들이닥쳤고, 그는 붙잡혀 심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반복되는 폭력과 공포 속에서 오사마가 붙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뿐이었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그에게 지휘관은 이곳을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오사마는 아내 모나와 두 살배기 딸 말락을 데리고 요르단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가족은 친척 집에 머물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오사마의 마음에는 거듭 마주한 죽음과 폭력의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 삶까지 되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01 / 03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던 위삼은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위삼을 끌고 가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고 눈이 가려진 채, 수갑에 묶인 채, 사흘 동안 버려져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의 발견으로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으나 박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납치와 폭행, 어린 딸의 죽음, 고향을 떠난 피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아이들의 배고픔만이라도 채워주고 싶습니다.”
02 / 03
이라크 모술 인근의 한 기독교 마을에 살던 마리암의 가족은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IS의 습격으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개종, 도망, 혹은 죽음 중에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지키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가족은 옷만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고, 다음 날 마을이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걸 포기하면 모든 것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걸 알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는 건 더 끔찍한 일이에요. 우리에게서 이 사랑을 빼앗아갈 수 없어요."
03 / 03
이라크 바그다드의 기독교 마을에 살았던 유시프의 가족은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무슬림들의 협박으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명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유시프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유시프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까지 찾아 온 사람들을 본 유시프의 부모님은 위험하지만 떠나기로 했습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유시프는 감염믈 막는 여러 번의 수술을 받기 위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저에게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깨끗한 기름으로 불태워질 자격이 없다고 말했어요. 목부터 허리까지 상처로 뒤덮여 너무 고통스러워요. 박해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01 / 03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던 위삼은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위삼을 끌고 가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고 눈이 가려진 채, 수갑에 묶인 채, 사흘 동안 버려져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의 발견으로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으나 박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납치와 폭행, 어린 딸의 죽음, 고향을 떠난 피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아이들의 배고픔만이라도 채워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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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모술 인근의 한 기독교 마을에 살던 마리암의 가족은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IS의 습격으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개종, 도망, 혹은 죽음 중에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지키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가족은 옷만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고, 다음 날 마을이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걸 포기하면 모든 것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걸 알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는 건 더 끔찍한 일이에요. 우리에게서 이 사랑을 빼앗아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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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의 기독교 마을에 살았던 유시프의 가족은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무슬림들의 협박으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명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유시프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유시프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까지 찾아 온 사람들을 본 유시프의 부모님은 위험하지만 떠나기로 했습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유시프는 감염믈 막는 여러 번의 수술을 받기 위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저에게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깨끗한 기름으로 불태워질 자격이 없다고 말했어요. 목부터 허리까지 상처로 뒤덮여 너무 고통스러워요. 박해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집, 식료품, 치료와 약, 아이의 배움. 피난 뒤 기독교 난민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더펠로우십은 2019년부터 “Rescue for the persecuted (박해로부터의 구호)” 사업을 통해 고향을 떠나 주변 국가로 피신해 온 기독교 난민들을 돕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 교회 및 협력기관과 함께 기독교 난민 가정의 필요를 확인하고, 식료품과 의료 지원이 필요한 가정에 도움을 전합니다.
한 번의 도움으로 끝나는것이 아닌 한 가정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끔찍한 폭력과 학살의 피해자가 된 크리스찬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도울 수 있었음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이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신 더펠로우십 전세계 후원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펠로우십의 긴급대응 부문 책임자 사프완 마리치
이스라엘과 시리아 국경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식량과 구호품을 실은 트럭들이 빛과 소리를 최소화한 채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박해와 잔혹한 폭력이 이어지는 시리아의 위험 지역으로 향하는 긴급 구호 작전이었습니다.
언제든 공격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기에 모든 과정은 긴장 속에서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박스 하나하나에 생명을 살리려는 손길이 더해졌고, 위험 속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도 함께 이어졌습니다.
구호품은 시리아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박해를 겪고 있는 기독교인과 드루즈 공동체에 전달됐습니다. 고립된 채 생존을 위협받던 이들에게는 삶을 이어주는 생명의 통로이자 자신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희망의 증거였습니다.
위험 지역에서 진행된 이번 구호 활동은 더펠로우십이 주도했습니다. 오랜 세월 신앙과 정체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온 이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폭력 속에서 기독교인과 드루즈 공동체가 여전히 공격의 대상이 되는 지금, 더펠로우십은 국경과 종교를 넘어 생명을 지키는 손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후원은 식료품과 치료·약품 등 기독교 난민 가정이 하루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됩니다.
이들은 임시 거주지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국가로 다시 이주 하기까지 평균 5년 이상의 길고 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생계가 막막하기만 한 기독교 난민 가정들에게는 최소한의 기본 생활을 이어갈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월 2 만 원으로
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기초 식료품 지원
월 3 만 원으로
한 아이가 한 달 동안 받을 수 있는
교육비 지원
월 5 만 원으로
한 가정이 한 달 동안 지낼 수 있는
주거비 지원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에서 도망쳐야했던 기독교 난민 가족들이 다시 일상을 세울 수 있도록, 오늘 함께해 주세요.
기독교 난민 가정 후원하기